희망으로 건너가는 다리, 기나긴 폭풍 후에 맺힌 무지개

 

이진명,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

  조각가 최승호, 아니 예술가 최승호는 급박하게 압축시켜 성장한 현대미술의 분위기에서 독자적인 길을 걸어왔다. 서구미술의, 그리고 어느 정도 서구미술을 닮은 우리 현대미술이 선택했던, 플라톤 식의 노블 라이(noble lie)를 스스로 거절한 외길을 살았다. 위대한 거짓말은 서구의 역사가 지성사, 즉 history of the intelligent로 짜있다는 것을 뜻한다. 하나의 문화에 엘리트가 있다면 수많은 중서(衆庶)가 만든 복합적인 의미도 있다. 하나의 문화권에서 특정 엘리트가 배양된다는 것은 이 엘리트들과 더불어 혜택과 권위를 누리는 정치적 집단의 판단과 노력이 개입되었다는 뜻이다. 1980년대에 서구 역사에서 이 지성사에 대한 반성이 시작되었다. 가령 윌리엄 보우스마(William J. Bouwsma)는 이념의 역사에서 의미의 역사로의 이동이라는 강렬한 언명을 남겼다.[1] 역사가 다만 지성에 의해서, 엘리트에 의해서 기술되고 주도되었다는 것은 여타 수많은 사람들이 역동적으로 만들어낸 의미의 역사를 무시하는 폭력적 처사이다. 서구 플라톤주의 이래로 진행되었던 서구의 메인스트림은 지성사였다. 그러나 의미로서의 역사는 이성과 관념에 특권적 지위를 부여하지 않는다. 인간의 행동과 사고에는 감정과 경험, 그리고 일상에서 느끼는 감수성도 있으며 이것은 이성만큼이나 중요하다는 것이다. 인간의 행위에는 의미의 구축과 상징적 표현이라는 차원이 있음에 주목한다. 클리포드 기어츠(Clifford Geertz)라는 인류학자가 인간을 “스스로 자아낸 의미의 그물에 매달려 있는 동물(an animal suspended in webs of significance he himself has spun)”이라고 정의한 바 있는데, 이 의미의 그물이야말로 문화를 구축하는 상징들이다.

  조각가 최승호 역시 1980년대 후반부터 두각을 나타냈다. 한국 현대미술계를 점유하고 있었던 모더니즘의 실험과 형식주의적 미술에 물론 깊이 감화되어있었다. 그러나 일상의 소재가 지닌 시각적 의미를 적극적으로 파헤쳐 존재 물음을 시도하면서 삶의 의미를 성찰하려 했고 주위를 놀라게 했다. 가령 모든 존재와 사물은 서로 연관되어있으며 도구의 전체성 안에서 의미를 발현한다. 최승호는 사물을 절단하고 서로 다른 속성의 사물을 연결 지으면서 의미의 형질변경을 완성시켰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더욱 발전된 의도를 개진시켰고 새로운 형식 실험을 다시 성취해낸다. 알루미늄 판을 구부리고 자르고 접합해서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 군상의 내밀한 심리를 서정적으로 그려냈는데 차가운 금속 속에서 섬세한 감정의 싹을 틔워냈다. 그런데 이렇게 차가운 알루미늄 금속 속에서 서정적 정서가 물씬 싹을 틔웠다는 사실만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이 서정적 조각으로 현대미술의 환원주의적 속성과 제도적 공모를 스스로 반성했다는 사실이 더욱 중요하다.

 

이진명, (대구미술관 학예연구실장)

[1] William J. Bouwsma, From History of Ideas to History of Meaning, The Journal of Interdisciplinary History, Vol. 12, No. 2, The New History: The1980s and beyond (II) (Autumn, 1981), pp. 279-2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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