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나 작가노트

인간의 의식적인 지각은 연속이 아니라 불연속적인 순간들로 구성되어 있으며, 이것들이 죽 연결되어 연속적인 것처럼 보일 뿐이다. 따라서 객관적인 사실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불가능 하며, 이러한 시지각의 오류는 예기치 못한 미지의 영역을 경험하게 한다. 강렬하게 대비되는 색의 플라스틱 판을 얇게 가공하여 이를 규칙적으로 배열한 면들은 일정한 방향성을 갖고 유기적으로 얽히며 일렁이는 시각 효과를 낳는다. 얽히고설킨 형태는 곧 움직일 것처럼 보이는데 이것은 마치 인간의 장기 같기도, 풀밭에서 꿈틀대는 생명 같기도 하다. 시지각의 오류는 인지의 경계를 무너트리며, 연속과 불연속적인 시간 가운데서 건져 올린 나의 은밀한 상상을 자극한다. 잔상효과는 ‘제대로 보는 것’이 불가능하기에 가능한 것이며, 이러한 불완전함에서 비롯되는 착각은 인간만이 누리는 환상적인 세계로 안내한다.

서은영 작가노트

일반적으로 아름답다고 묘사되는 식물은 꽃이 완벽하게 만개한 즉, 색과 향 그리고 화려한 형태를 가진 상태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시든 식물은 화려했던 꽃이 생명력을 잃어 비루하게 죽어가는 의미의 상징이 일지도 모른다. 그 자리에 그대로 머무는 정적인 존재라 인식되는 식물은 그 자리에서 꽃을 피우고 천천히 죽어가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그러나 뿌리가 이동할 수 없음이 오히려 더 그 주변 환경에 적응시키게 만든다. 뿌리가 이동할 수 없는 식물은 오히려 자신의 주변 환경을 파악하고 흐름과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자연의 힘을 이용해 씨앗을 퍼트리기 위해 움직이고자 한다.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적응하여 변화하는 과정 속에서 생기는 그들의 움직임은 시들어가며 유려한 선을 만든다. 나에게 이울어가는 꽃은 생명력을 잃고 소멸해가는 것으로 치부하고 버려지기엔 꽃의 삶의 흔적이 담긴, 그 세월의 힘이 담긴 무언가로 다가왔다. 자신의 색과 향 그리고 형태를 잃어가는 이울어진 식물은 빛바래 가며 그 식물이 살아온 흔적이 도드라지는 색감을 가졌으며, 수분을 잃고 비틀어지고 말라가며 꽃잎과 줄기에 주름진 형태는 죽어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삶의 굴곡이 유려한 선을 만들어지게 되었다. 이렇듯 이운 식물은 시간의 흔적을 담고 그 세월의 속에서 피어나 생명력을 강하게 나타낸다.

유아미 작가노트: 장신구로 표현한 일상의 시적 순간들

일상에서 마주친 것들의 강렬했던 순간은 추상적인 영상으로 머릿속에 남는다. 그것이 내게서 영원히 사라지기 전에 무언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붙잡아 두고 싶다. 일상의 어느 순간을 기록하는 매체로 말이나 글이 아닌 ‘장신구’라는 사물을 택하여 이로 하여금 ‘그 일상의 순간’을 눈앞에 존재하게 한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를 기억하기 위해서 말이다. 그때 마주쳤던 그 순간에 그들이 너무 사랑스러웠고 안쓰러웠으며 나를 슬프게 했음을 말이다.  나는 일상적이지만 그래서 더 강렬한 그런 순간을 ‘시적 순간’이라고 표현한다. 그 때에 느끼는 강렬한 인상과 그 때에 마음에 일어나는 여러가지 감정에 대한 함축적인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결정적인 순간 말이다.그리하여 일상의 어느 순간이 기억 속에 남긴 영상, 말과 글로는 미처 다 설명하기 어려운 그 영상을 빠르게 그림에 옮기고, 그림을 다양한 물질로 대신하여 실재 사물인 장신구로 완성한다. 이를 통해 그때에 강렬하게 존재를 드러냈지만, 현재에 그리고 기억에서 ‘사라지는 것’을 실재하는 사물로 이끌어 ‘의미 있는 것’으로 다시 존재하게 하겠다는 바람을 실현한다.지금, 일상에서 마주친 그리고 결국에는 사라지는 존재들이 ‘나와 그리고 내가 마주했던 결코 시시하지 않은 순간들에 대한 기록’을 통해 눈앞에서 다시금 숨쉬고 있다.

윤주연 작가노트

자연의 현상을 시각적으로 표현하여 치유와 감정 교감을 주제로, 자연의 공간적 배경인 숲, 하늘에서 느낄 수 있는 현상과 색채를 모티브로 작업한다.‘울창한 숲속 나뭇가지 사이로 들어오는 빛’, ‘바람에 흔들리는 나무의 소리와 나뭇잎의 날림’, ‘올려다본 하늘의 무지개와 밤하늘의 별‘, 인간의 영역에서 벗어난 자연은 그대로의 모습으로 인간에게 치유의 공간이 되고, 이런 자연 현상과 자연을 이루는 요소들의 색상은 시각을 통해 인간의 심리에 영향을 미친다. 바쁜 일상 속에서 작품을 통해 자연의 간접적으로 느끼며 치유, 휴식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

이나진 작가노트

신화는 인간의 역사에 상상력이 더해져 만들어진 산물이다.그것은 허구로 가득한 이야기로 보이지만 우리의 삶에 현실적으로 개입하여 영향을 주기도 한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내적, 외적인 요인들로 인해 고통 받는데 신화는 우리가 마주하는 현실을 다른 각도로 볼 수 있는 상상력을 제공한다. 그래서 직면한 난제를 극복할 수 있는 지혜를 얻기도 하는 것이다. 따라서 신화는 그저 기억너머에 자리한 지나가버린 과거의 것이 아니다. 바로 현재의 자리에서 경험하고 배우며 영향 받는 현실적인 이야기가 된다.고난을 극복하는 지혜를 얻고 상처받은 감성을 치유 받는 것은 신화 속에 자리한 교묘한 사회적, 정치적 장치의 정교한 작동에 의한 것이지만 우리는 그것을 매우 감성적인 감각으로 수용하게 된다.

 

내가 구축하는 형태는 하나의 구체적 시각언어 체계의 범주에 있지만 그것은 감각으로 환기 된 직관에서 출발한다. 그것은 현실 속에서 구현되는 신화적 상상력의 또 다른 표현법이기도 하다. 상상 해보자! 신을 현실의 시간 속에서 조우한다면 우리가 보게 되는 대상은 어떤 모습일까? 내가 상상하는 신은 '산해경'의 혼돈의 신 '제강'처럼 천진난만하며 친근하고 유머러스 한 모습이다. 절망에 빠진 이들을 다시 웃게 해주는 능력을 지닌 신이다.

 

나는 일상의 경험들을 다양한 방법들로 기록해 왔다. 파편적인 기억들은 언어화된 것들이지만 그것은 구조적이고 물질적인 가치로 환원 된다. 비가시적인 것을 가시적 영역에 놓는 것은 우리가 존재에 대해 끊임없이 의심하는 신의 모습을 구체화 하는 것과 같다. 그것은 풍성한 상상력을 기반으로 하는 즐거운 행위이다. 그렇게 형상화된 신의 모습이 근엄하기만 하고 인간 위에 군림하는 대상으로 자리한다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했다.

 

칠보 위의 드로잉은 형상과 색 질감 같은 물성에 반영된 내 감정과 정신적 열정의 결과물이다. 일상의 경험과 자극으로부터 만들어내는 상상의 산물들, 그것이 내가 생각하는 신화의 본 모습이며. 그것이 나와 함께하는 순간 나의 신체에 자리하는 순간 내가 신의 가치로 치환시킨 물질은 가장 매력적인 장신구가 될 것이다.

한은지 작가노트

모든 생물은 성장한다. 개체 내부에서 일어나는 생명현상을 통해 동물은 호흡하고 운동하며 식물은 꽃을 피우거나 열매를 맺는다. 생물이 스스로 살아가기 위해 만들어낸 에너지는 운동의 흔적이며 이는곧 생명력으로 이어진다. 생물의 원동력으로 작동하는 생명 현상을 상상하며 개인적인 관점에서 조형적으로 해석되었다. 생명력을 시각적으로 표현하고 생물을 보는 새로운 관점을 장신구라는 매체를 통해 표현 한다. 주 기법으로 사용한 자수는 점, 선, 면으로 이루어진 바늘땀에서는 방향성과 리듬감을 느낄 수 있으며 미세한 운동성을 보이는 질감은 생동감을 보여줄 수 있는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 또 자수는 장식성을 띠며 시각적 감각을 풍부하게 자극할 수 있는 기법이다. 작업에서는 이러한 자수의 조형적 특징을 바탕으로 생명력의 흐름과 순환, 생물의 성장을 중점으로 자수로 표현하였다. 바탕 형태는 생물의 원래 크기와 비례를 무시하고 복제, 증식, 변형, 움직임, 성장을 중심으로 자유롭게 드로잉 하였다. 형태를 이루는 주 재료는 한지를 사용했다. 얇은 한지는 여러 겹 쌓아 올려 견고한형태를 가지게 되며 단단해진 한지 위로 바늘이 지나간 자수의 흔적은 마치 생명력의 연결고리를 이어 나가는듯 하다. 유기적이고 모호한 한지의 형태는 어떤 생명체를 연상시키거나 상상력을 불러일으키게 한다.

Tong-In Gallery, 32 Insadong-gil Jongno-gu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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