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경국의 ‘몽상화(夢想畵)’

 

    아! 난 그의 작업실을 들어서자마자 자신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난 그의 작업실 벽면에 있는 <소년>(2018)을 보자마자 감동했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나의 머리가 아닌 가슴으로 먼저 다가왔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의 작품을 온몸으로 받아들였다. 당시 내가 장경국의 작업실에서 보았던 작품들은 대부분 ‘인물화’였다. 그의 ‘인물화’는 나의 마음을 격하게 흔들어놓았다. 그렇다! 그의 ‘인물화’는 나의 심장에 꽂혀 있다. 내가 이 ‘들어가는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당시 그의 ‘인물화’를 보면서 느꼈던 전율이 그대로 살아있다.

   나는 장경국의 ‘인물화’에서 군더더기를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의 ‘인물화’는 소박하고 담백하지만 밀도감 있게 표현되어 있어 나의 뇌리에 또렷하게 각인되어 있다. 그의 ‘인물화’는 그처럼 밝고 맑은 눈을 지녔다. 하지만 내가 맑고 밝은 눈으로 한 걸음 들어가니 알 수 없는 슬픔을 느끼게 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맑고 밝지만 슬픔이 담겨있는 눈에 빠져들었다. 갑자기 나는 그 눈앞에서 마치 자신의 ‘알몸’을 노출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하지만 그 눈은 나에게 수치감(羞恥感)을 느끼게 하지는 않았다. 오히려 그 눈은 나에게 자신을 돌아보라고 다정하게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장경국의 작품 앞에서 숙연해졌다. 왜냐하면 나는 그의 작품에서 어떤 알 수 없는 숭고함을 느꼈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는 그의 작품 앞에서 자연스럽게 ‘무릎을 꿇었다’. 그리고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아니다! 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라기 보다 차라리 ‘못했다’라고 표현하는 것이 더 타당할 것 같다. 왜냐하면 그의 작품은 나의 마음을 사로잡아 수다스런 나의 입을 마치 ‘미싱’으로 박아놓은 듯 말문을 막아놓았기 때문이다. 그의 작품들은 나에게 삶이 무엇인지 묻는 것 같았다. 난 어느 순간부터 진부(陳腐)하게 간주했던 ‘삶이란 무엇인가’를 되새김질하게 되었다.

  우리는 누구나 종종 인생이 무엇인지 골똘히 생각해 보곤 한다. 인간의 삶에 대한 회의는 결국 자기 자신으로 돌아간다. 나는 누구인가? 하지만 나는 자기 자신을 찾는 여정에서 중도 하차한다. 물론 나는 잊을만하면 다시 자신을 찾는 여정을 재시도한다. 그러나 나는 매번 그러했듯이 다시금 자신 찾기 여정에서 하차한다. 나의 잃어버린 나 찾기는 그렇게 매번 반복된 중도 하차를 통해 제자리걸음만 했다. 그리고 나는 어느 날 ‘인생에 정답은 없다’고 중얼거리면서 잃어버린 나 찾기를 그만두었다.

  그런데 장경국은 미대 재학시절부터 끈질기게 자기 자신을 탐구해 오고 있다. 그 점은 그의 작품들을 모조리 조회해 보면 알 수 있다. 그의 작품들은 꾸준히 자기 자신을 탐구하는 것으로 나의 눈에 보였다. 이를테면 그의 ‘인물화’는 인간에 대한 끊임없는 성찰 없이는 도달할 수 없는 작품이라고 말이다. 궁금했다. 어떻게 그는 인간을 꾸준히 탐구할 수 있는 것일까? 도대체 지칠 줄 모르는 자기 탐구의 ‘힘’은 어디에서 기인되는 것일까? 그리고 그가 자기 성찰을 통해 깨달은 바는 무엇일까?

 류병학 미술평론가 글에서

Tong-In Gallery, 32 Insadong-gil Jongno-gu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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