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의 근원을 향한 끊임없는 도전과 지적 탐색

 

 

Ⅳ.

언어적인 측면에서 볼 때, ‘관계’는 단독으로는 이루어질 수 없다. 늘 상대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은 ‘사이(between)’의 구조를 지닌다. 선과 선 사이, 면과 면 사이, 입체와 입체 사이라고 하는 용례에서 보듯이 김재관의 수많은 작품들은 구조적으로 볼 때 결국 ‘사이’의 파생물들이다. 동양의 관점에서 보면, 하늘과 땅 사이에 ‘사람’이 있는 ‘천지인(天地人)’의 관계인 것이다. 따라서 김재관의 ‘관계’는 사람에 대한 유비(analogy)로서의 그리드, 즉 하늘과 땅(상하)을 잇고 좌와 우를 매개하는 매개자로서의 중간 항(+)의 위상을 이름이다. 동양의 세계관을 표상하는 이러한 방식의 구조는 일신론적인 서양의 기독교적 세계관이 표상하는 것과 판이하다. 주지하듯이 서양의 세계관은 중세 때까지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형성된 수직적 체계(주종관계)에서 르네상스시기에 오면 인간의 시선이 표상하는 수평적 체계로 대체되는데, 원근법은 이의 대표적인 표상체계이다. ‘시각의 합리화’를 의미하는 원근법은 지리상의 발견이 의미하는 것처럼 세계를 지배하는(control) 원리인 바, 종래는 서구 제국주의를 탄생시키는 중심축이 되었던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김재관의 그리드를 통한 원근법의 부정은 주역의 체계를 빌어 동양적 세계관의 입장에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다. 주역에서 기본이 되는 양효(-)와 음효(--)의 다양한 조합은 이 두 효들의 수평과 수직 이동으로 이루어진다. 주역의 64괘는 양효와 음효의 다양한 결합의 산물이며, 근본적으로 주역은 양효와 음효 사이의 관계를 묻는 관계의 철학이다. 그런데 자연의 세계나 인간의 세계나 간에 관계는 일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늘 변화하기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변화의 관점에서 우주와 자연, 인간을 파악하는 철학이 바로 주역인 것이다. 주역의 영어명이 ‘The Book of Changes’인 점도 의미심장하다.

김재관의 <Persnalities>, <Myth of Cube>, <Cube-Secretness>, <Deviation from Grid>, <Distorted Cube>, <시각의 차이> 등등 2천 년대 이후에 실험한 김재관의 작업들은 앞에서 본 것처럼 서구의 합리적 세계관의 산물인 원근법과 그리드의 체계를 어떻게 극복하고 새로운 형식을 창안할 것인가 하는 고민에 대한 해결의 모색이었다.

내가 보기에 김재관의 작품세계는 궁극적으로 ‘힘과 지배(power and control)’로 대변되는 서구의 제국주의적 세계관을 위한 표상체계에서 벗어나 동양의 주역이 의미하는 것처럼 조화와 상생의 세계관의 입장에서 새롭게 해석할 수 있는 충분한 여지가 있다. 김재관이 앞에서 열거한 연작을 통해 평면성을 새롭게 해석하고, 사각형과 입방체의 다양한 변형과 조합을 통해 무수한 경우의 수를 조형실험을 통해 제시한 목적은 작품의 낱낱의 내용보다는 전체를 관류하는 새로운 형식의 창안 모색에 두어진다. 지난 2천 년대 이후 그가 창출한 새로운 형식들이 세계 미술계에서 인정받기까지에는 좀 더 오랜 검증의 기간이 필요할 지도 모른다.

내가 보기에 요한 호이징가(Johan Huizinga 1872-1945)가 언급한 것처럼 2천 년대 이후 김재관의 작품들에는 ‘놀이성(Homo Ludens)’으로 가득 차 있다. 마치 퍼즐을 풀듯이 수많은 경우의 수를 담고 있는 그의 작품들은 딱딱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비의적으로 느껴진다. 마치 우주 발생(Big Bang) 당시의 신비스러운 상태로 환원하기라도 하듯 존재의 근원을 향한 김재관의 지적 탐색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윤 진 섭(미술평론가) 내용 일부 발췌

Tong-In Gallery, 32 Insadong-gil Jongno-gu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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