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노트_박종진

 

   나의 도예 작업은 우리 일상생활에서 흔히 사용하는 종이에 점토 슬립을 한 겹씩 발라서 쌓는 방식으로 만든다. 종이에 흡수되어 건조된 점토더미는 고온의 불에 구워져 도자기가 된다. 종이는 형태를 구성하는 과정에서 재료로만 사용될 뿐 결과물에서는 그 존재가 삭제된다. 가마에서 구워지는 동안 타 없어지기 때문인데, 그 흔적만이 전이되어 종이를 흙으로 박제한 것 같은 결과물을 가지게 된다. 이 결과물은 아이러니하게도 너무나 종이같아 보인다. 형태에 있어서도 도자기의 최초 목적인 그릇의 기본적인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결 사이에 미세한 틈으로 인해 담아 저장하는 도자로서의 역할을 삭제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것은 무엇일까?나는 이렇게 바르고 쌓고 구워진 적층의 형상을 보고 있노라면 이 작업의 출발점인 해안가에 가파르게 깍인 지층의 형상이 다시금 떠오른다. 낮선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했던 그 시절이나, 점토라는 물질을 처음 대하고 무엇인가를 창조했던 과거의 경험, 그리고 나를 둘러싼 상황과 사람들에 대한 기억들이 켜켜히 쌓여 다시금 회상하게 되는 것이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시간의 깊이’에 반응한다. 이 가정을 기반으로 수행한 조형적 실험은 다양한 분야로의 확장 가능성으로 다가왔으며, 현재도 다양한 시도를 통해 새로운 물성을 찾아가고 있다.

Tong-In Gallery, 32 Insadong-gil Jongno-gu Seou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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